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야에 대해 글을 써보면, 스스로 아는 게 생각보다 별로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일은 혹독한 검증 과정입니다.
처음 선택한 단어는 대개 틀리기 마련이어서, 원하는 바를 정확히 담아낼 때까지 문장을 고치고 또 고쳐야 합니다.
머릿속 생각 역시 불명확할 뿐만 아니라 불완전하기까지 합니다.
에세이에 담기는 핵심 생각의 절반은 글을 쓰는 과정에서 떠오른 것들입니다.
사실 이것이 제가 글을 쓰는 진짜 이유이기도 합니다.
글을 출간하고 나면 사람들은 그 내용이 글을 쓰기 전부터 저자가 하고 있던 생각이라고 믿습니다.
이미 완성된 생각을 그저 언어로 표현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죠.
하지만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이것이 사실이 아님을 압니다.
생각을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생각 자체가 변화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고쳐 쓸 수 없을 만큼 결함이 심해 버려진 생각들도 수두룩할 것입니다.
글쓰기가 이토록 까다로운 이유는 단순히 생각을 단어로 묶어두어야 해서가 아닙니다.
진짜 검증은 자신이 쓴 글을 다시 읽는 순간에 일어납니다.
낯선 독자의 눈으로 보았을 때, 이 글은 타당하고 완벽해 보일까요? 대부분 처참합니다.
제 글이 '낯선 독자'의 검수를 통과하기까지는 수많은 수정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X라는 설명을 빼먹었거나 특정 문장의 전제가 부족해서 그 독자가 만족하지 못한다면, X를 언급하거나 전제를 보완해 주면 됩니다.
"이제 만족해?"라고 물으면서 말이죠.
그 과정에서 공들여 쓴 멋진 문장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머릿속 생각이 너무나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곧바로 완성된 글처럼 술술 흘러나오는 사람이 존재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으며, 만약 자기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건 뛰어난 능력이라기보다는 한계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규칙이 명확히 정의된 영역에서는 머릿속만으로 완벽한 생각을 구성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머릿속으로 체스를 둘 수 있습니다.
수학자들 역시 일정 수준의 계산은 머릿속으로 해내지만, 증명이 일정 길이를 넘어가면 직접 써보기 전까지는 확신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는 형식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생각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어찌 보면 이들이 하는 행동 역시 머릿속으로 생각을 언어화하는 과정이라 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어느 정도는 머릿속으로 에세이를 씁니다.
길을 걷거나 침대에 누워 있다가 떠올린 단락이 최종본에 거의 그대로 반영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때의 저 역시 실제로 글을 쓰고 있는 셈입니다. 손가락만 움직이지 않을 뿐, 글쓰기의 정신적 작업을 똑같이 수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지 않고도 어떤 분야에 대해 아주 많이 알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알고 있는 내용을 직접 설명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완벽히 통달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저는 제가 깊이 파악하고 있던 두 가지 주제, 즉 '리스프(Lisp) 해킹'과 '스타트업'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두 경우 모두 글을 쓰면서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직접 말이나 글로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서야 비로소 자각하게 된 사실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저만의 예외적인 경험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지식의 상당 부분은 무의식 영역에 존재하며, 전문가일수록 초보자보다 무의식적 지식의 비중이 훨씬 더 높습니다.
모든 생각을 탐구하는 데 글쓰기가 최고의 방법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건축에 관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실제로 건물을 지어보는 것이 가장 좋은 탐구 방법일 것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다른 방식으로 생각을 아무리 깊이 탐구한다 해도 이를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또 다른 사실을 배우게 된다는 점입니다.
물론 생각을 언어화하는 것이 반드시 글쓰기일 필요는 없습니다.
대화라는 고전적인 방법을 이용할 수도 있죠. 하지만 제 경험상 글쓰기가 훨씬 엄격한 검증 도구입니다.
가장 최적화된 단어 조합을 확정해야 하고, 목소리의 억양이나 어조에 기대어 뭉뚱그려 넘어갈 수도 없습니다.
또한 대화에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집요한 몰입이 가능합니다.
저는 에세이 한 편을 쓰기 위해 2주를 넘게 고민하고 초안을 50번 이상 다시 읽곤 합니다.
만약 사석에서 말을 할 때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보일 것입니다.
대충 때우려 한다면 말이나 글이나 무용지물이겠지만, 완벽을 기하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붙이고자 한다면 글쓰기가 훨씬 더 높은 산입니다.
이처럼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사실을 길게 설명한 이유는, 이것이 충격적인 또 다른 결론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글로 적는 행위가 언제나 그 생각을 더 정교하고 완전하게 만든다면,
어떤 주제에 대해 글을 쓰지 않은 사람은 그 주제에 대해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글을 전혀 쓰지 않는 사람은 그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정리된 생각을 가질 수 없습니다.
스스로는 완벽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특히 자신의 생각을 비판적으로 검증하는 습관이 없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머릿속 생각은 그 자체로 완벽해 보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을 언어로 구현하려 시도하는 순간 비로소 결함이 드러납니다.
따라서 자신의 생각을 검증대에 단 한 번도 올려놓지 않는다면, 결코 완벽한 생각을 갖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사실조차 평생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생각을 글로 옮긴다고 해서 그 생각이 무조건 옳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글쓰기는 올바른 생각에 도달하기 위한 '충분조건'은 아닐지라도, 결코 빠뜨릴 수 없는 '필수조건'입니다... 원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