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할 때 조차 내가 어딘가로 가고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일하지 않을 때 아무 데도 못 가고 있다는 건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느낌은 끔찍합니다.
여느 어린아이처럼 저도 새로운 걸 배우거나 해냈을 때의 성취감을 좋아했습니다.
크면서 그 감정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때의 혐오감으로 바뀌었습니다. 날짜를 정확히 짚을 수 있는 이정표는 딱 하나입니다. 열세 살에 TV를 끊은 일입니다.
패트릭 콜리슨(스트라이프 창업자)에게 언제부터 빈둥거리는 게 싫어졌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습니다.
"열세 살이나 열네 살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거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면서 '왜 나는 여름방학을 낭비하고 있지?'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일을 진지하게 대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아마 학교였을 겁니다.
학교는 일(학교가 '공부'라고 부르던 것)을 지루하고 무의미하게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진짜 일이 무엇인지 알고 나서야 저는 그 일을 온 마음으로 원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대학에서도 무의미한 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학과 전체가 무의미한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일이 무엇인지 알아갈수록, 그 일을 하고 싶은 제 욕구가 마치 처음부터 짝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거기에 딱 맞아 들어갔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진짜 일이 무엇인지 알아야 비로소 그 일을 사랑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하디는 <어느 수학자의 변명>에서 이걸 멋지게 표현했습니다.
"어린 시절 수학에 열정을 느꼈던 기억은 없다. 수학자라는 직업에 대해 품었던 생각도 고귀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게 수학은 시험과 장학금이었다. 나는 다른 아이들을 이기고 싶었고, 수학이 가장 확실하게 이기는 방법처럼 보였을 뿐이다."
그는 대학 중반에 조르당의 <해석학 강의>를 읽고 나서야 수학이 진짜 무엇인지 알게 됐습니다.
"그 놀라운 책을 읽던 때의 경이로움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 세대 수많은 수학자에게 첫 영감을 준 그 책을 읽으며, 나는 처음으로 수학이 진정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되었다."
진짜 일이 무엇인지 알려면 두 종류의 가짜를 걸러낼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는 하디가 학교에서 마주친 가짜입니다. 아이들에게 가르치려고 다듬는 과정에서 과목은 왜곡됩니다. 실제 현업자가 하는 일과 전혀 닮지 않을 만큼 왜곡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른 하나는 어떤 일 자체에 내재된 가짜입니다. 원래부터 가짜인 일, 좋게 봐줘야 바빠 보이기 위한 일이 있습니다.
진짜 일에는 일종의 묵직함이 있습니다.
진짜 일의 모양을 알았다면, 이제 하루에 몇 시간을 쏟을지 알아내야 합니다.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을 일한다고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많은 일에는 어느 선을 넘으면 결과물의 질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지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한계는 일의 종류와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저는 여러 종류의 일을 해봤는데, 일마다 한계가 달랐습니다. 어려운 글쓰기나 프로그래밍은 하루 다섯 시간 정도가 한계입니다.
반면 스타트업을 운영할 때는 하루 종일 일할 수 있었습니다. 적어도 그 3년 동안은 그랬습니다. 훨씬 더 오래 했다면 가끔 휴가가 필요했을 겁니다.
한계를 찾는 유일한 방법은 그 선을 넘어보는 것입니다. 지금 하는 일의 질에 예민해지세요. 그러면 너무 무리해서 질이 떨어질 때 알아챌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정직함이 결정적입니다. 양쪽 방향 모두로요. 게으름을 피울 때도 알아채야 하고, 너무 무리할 때도 알아채야 합니다.
혹시 과로에 뭔가 훌륭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은 버리세요.
결과만 나빠지는 게 아닙니다. 결과가 나빠지는 이유가 과시 때문입니다. 남에게가 아니라면, 자기 자신에게 하는 과시 말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한계를 찾는 건 한 번에 끝나는 일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일의 난이도도, 그 일을 해내는 내 능력도 시시각각 달라집니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를 계속 판단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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