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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 단골 연설의 논리는 이렇다.
먼저 20년 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정한 다음,
"그 사람이 되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를 묻는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제안하고 싶다.
미래의 특정 목표에 자신을 묶어 두지 말고,
지금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길 가운데
앞으로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는 쪽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무엇을 하느냐 자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시간만 낭비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흥미가 생기는 일을 하고, 앞으로 선택지를 더 많이 만들어 줄 경험을 쌓아라.
어떤 길을 "최종적으로" 택할지는 나중에 고민해도 된다.
예를 들어 대학 신입생이 수학과 경제학 중 어느 전공을 선택할지 고민한다고 해보자.
이 경우라면 수학이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 준다.
수학을 전공하면 거의 어떤 분야로든 진출할 수 있다.
수학을 전공한 사람이 경제학 대학원에 가는 것은 비교적 쉽지만,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이 수학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은 훨씬 어렵다.
하지만 고등학생 입장에서는 이런 의문이 생길 것이다.
수학이 경제학보다 선택지를 더 많이 만들어 줄 거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냐는 것이다.
정답은 간단하다.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 여러분의 일이다.
똑똑한 사람들과 어려운 문제를 찾아라.
똑똑한 사람들은 서로 모인다.
그런 무리를 발견했다면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은 거의 언제나 좋은 선택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을 찾아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세상에는 그럴듯하게 꾸며진 것들이 너무 많다.
대학 신입생의 눈에는 모든 학과가 비슷해 보인다.
교수들은 모두 엄청난 지식인처럼 보이고, 논문도 외부인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
하지만 어떤 분야의 논문은 정말 어려운 아이디어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이해하기 힘든 것이고,
어떤 분야의 논문은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일부러 난해하게 쓰인 것에 불과하다.
이 말이 지나치게 도발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이다.
허상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다.
어려운 문제를 붙잡고 있는 것.
소설을 쓰는 것은 어렵다.
소설을 읽는 것은 그렇지 않다.
어렵다는 것은 걱정이 따른다는 뜻이다.
내가 만드는 것이 형편없이 나올까 봐 걱정되지 않는다면,
공부하는 내용을 끝내 이해하지 못할까 봐 불안하지 않다면,
그 일은 충분히 어려운 일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어느 정도 긴장감이 있어야 한다.
여기까지 들으면 세상을 너무 힘들게 보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결국 걱정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요?"
그렇다.
하지만 생각만큼 나쁜 일은 아니다.
걱정을 극복하는 순간에는 엄청난 희열이 있다.
올림픽 금메달을 딴 사람들보다 더 행복해 보이는 얼굴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왜 그렇게 행복할까?
안도감 때문이다.
물론 행복해지는 방법이 그것뿐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어떤 종류의 걱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결국 한 문장으로 줄어든다.
어려운 문제를 붙잡아라.
만약 내가 고등학생 시절, 누군가 "고등학생과 어른의 가장 큰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니?" 라고 물었다면
나는 아마 이렇게 답했을 것이다.
"어른은 돈을 벌어야 하잖아요."
하지만 틀렸다.
진짜 차이는 자기 삶에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돈을 버는 것은 그중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생각과 배움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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