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서른여섯 살이었고, 포틀랜드에 산 지 2년째 되던 해였습니다.
어느날 기막히게 멋진 집 하나가 매물로 나온 걸 보았죠.
기가 막힌 디자인, 도시 외곽에 위치한 완벽한 입지, 그리고 뒷마당은 거대한 주립공원으로 이어지는 곳이었습니다.
그 집에서 평생을 사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아내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손주들과 북적북적 이야기하며, 그 집이 다세대를 아우르는 중심축이 되는 상상을요.
그러다 문득 정신이 들었습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그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잖아!'
50년 뒤, 나는 과연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요?
"여보, 우리가 베를린으로 이사 간 게 몇 년도였지?"
"부에노스아이레스 다음이니까 2030년이지.
그러고 나서 2040년에 발리로 옮겼잖아."
"아 맞다. 베이징으로 가기 전 해에 발리에 있었지."
이게 제가 원하는 삶입니다!
남들의 안정된 삶을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그건 제 취향이 아닙니다. 저는 세계 구석구석에서 살아보고 싶거든요.
우리는 집, 직장, 배우자, 반려견처럼 중대한 선택을 내립니다.
그럴 때 대개 대상 그 자체만 생각하죠. 집의 외관이라든가, 직장의 연봉, 개가 얼마나 순하고 귀여운지 같은 것들요.
하지만 선택은 연쇄적으로 수많은 결과를 불러옵니다.
하나의 큰 선택이 뒤이어 올 수백 가지 작은 선택들의 형태를 결정짓는 것이죠.
저는 그 파급 효과, 즉 일상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후속 선택지들을 그려보려 애씁니다.
그러고 나서 거꾸로 생각해 봅니다.
내가 원하는 결과를 이미 알고 있다면, 과연 어떤 선택이 그 결과를 만들어낼 것인가?
어떤 큰 선택이 수백 가지 또 다른 선택들을 그 방향으로 밀어줄 것인가?
그 집을 보고 두 갈래의 길을 상상해 본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미국을 영원히 떠나고 싶다는 사실이 명확해졌고 저는 곧바로 런던행 항공권을 예매했습니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지만, 이 커다란 첫 번째 선택이 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할 것이라는 점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죠.)
하나의 큰 선택이 뒤따를 수백 가지 선택을 결정짓습니다.
그러니 여파를 미리 따져보고,
미래에서부터 거꾸로 상상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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