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나는 형편없는 작가들을 흉내 내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았다.
영어 수업에서 우리가 배운 글은 대부분 소설이었고, 그래서 나는 소설이 글쓰기의 가장 높은 경지라고 여겼다. 첫 번째 착각이었다.
가장 높이 평가받는 듯 보이는 이야기는 사람들이 복잡한 방식으로 고통받는 이야기였다.
웃기거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글은 그 자체로 의심스러운 대상이었다. 셰익스피어처럼 수백 년 전에 쓰여 이해하기 어려운 고전이 아니라면 말이다. 두 번째 착각이었다.
이상적인 형식은 단편소설처럼 보였는데,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단편소설의 전성기는 상당히 짧아서 잡지가 가장 잘 팔리던 시기와 대략 겹칠 뿐이었다.
하지만 그 분량이 고등학교 수업에 쓰기 딱 알맞았던 탓에 우리는 단편소설을 많이 읽었고, 그래서 단편소설이 번성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세 번째 착각이었다.
게다가 워낙 짧다 보니 사실상 아무 사건도 일어날 필요가 없었다. 아무렇게나 잘라 낸 삶의 한 조각만 보여 줘도 됐고, 그런 글이 세련됐다고 여겨졌다. 네 번째 착각이었다.
그 결과 나는 누군가가 심오해 보이는 방식으로 불행하다는 사실 말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야기를 잔뜩 썼다.
대학 시절 나는 철학을 전공했다.
철학 학술지에 실린 논문들에 나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인쇄된 지면이 무척 아름다웠고, 문체도 매혹적이었다. 어떤 대목은 느긋하다가도, 어떤 대목은 머리가 터져 넘칠 만큼 전문적이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걷다가 느닷없이 알아듣기 힘든 추상적인 개념에 사로잡히는 식이었다.
나는 이 논문들을 끝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시간이 나 더 꼼꼼히 다시 읽으면 이해하게 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논문들을 흉내 내려 최선을 다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이는 실패가 예정된 시도였다. 그 논문들은 사실 아무런 주장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철학자도 다른 철학자를 반박하지 못했는데, 반박할 만큼 분명한 주장을 내놓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탓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내 모방작들 역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학원에 가서도 나는 여전히 엉뚱한 대상을 흉내 내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전문가 시스템'이라는, 전문가의 판단을 대신해 준다고 내세우던 프로그램이 유행하고 있었다.
나는 이 프로그램이 하는 일을 보고 "이 정도는 내가 짜겠다"고 생각했다.
저명한 교수들이 이 프로그램에 관한 책을 쓰고 있었고, 스타트업들은 한 개에 연봉만 한 값을 매겨 팔고 있었다.
이거 기회다 싶었다. 남들이 대단하게 여기는 물건이 나한테는 쉬워 보이니, 내가 꽤 똑똑한 모양이라고. 틀렸다.
그저 한때의 유행이었을 뿐이다. 교수들이 이 프로그램을 두고 쓴 책들은 이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리고 그토록 비싼 값을 치르던 고객은 대부분, 드라이버 한 자루와 변기 뚜껑에 수천 달러를 지불하던 정부 기관들이었다.
엉뚱한 대상을 베끼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오직 진심으로 좋아하는 대상만 베끼면 된다.
이 원칙만 지켰어도 나는 세 경우 모두에서 헛발질을 면했으리라.
나는 영어 수업에서 읽어야 했던 단편소설을 즐기지 않았고, 철학 논문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으며, 그 프로그램을 직접 써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남들이 떠받든다는 이유 하나로 이 모두를 훌륭하다고 믿었다.
좋아하는 대상과 그저 감탄하는 대상을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한 가지 요령은 겉포장을 무시하는 것이다.
미술관에 근사하게 걸린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그림을 중고 장터에서, 때가 묻고 액자도 없이, 누가 그렸는지도 모르는 채 발견했다면 얼마를 내고 사겠느냐고.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이 실험을 해 보면 정말 깜짝 놀랄 만한 결과를 얻게 된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내는 또 다른 방법은, 남몰래 즐기는 즐거움을 들여다보는 데 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상 상당수는, 특히 젊고 야심 찬 사람일수록, 그 대상을 좋아한다는 데서 오는 도덕적 뿌듯함 때문에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어렵기로 소문난 소설을 읽는 사람의 99%는 읽는 내내 "나 지금 이 대단한 책을 읽고 있어"라고 속으로 되뇐다.
반면 남몰래 즐기는 즐거움은 적어도 순수하다.
고상한 척할 기운이 없을 때 당신은 무엇을 읽는가?
절반이나 읽었다는 뿌듯함이 아니라, 이제 절반밖에 안 남았다는 아쉬움이 드는 책은 어떤 책인가?
그런 책이 바로 당신이 진짜 좋아하는 책이다.
베낄 만한 진짜 좋은 대상을 찾았더라도 피해야 할 함정이 하나 더 있다.
그 대상을 훌륭하게 만드는 요소를 베껴야지, 결함을 베껴서는 안 된다는 점에 유의하라.
결함을 흉내 내는 쪽으로 끌리기 쉽다. 결함은 눈에 더 잘 띄고, 당연히 베끼기도 더 쉬운 까닭이다.
예를 들어 18세기와 19세기 화가 대다수는 갈색이 도는 색을 썼다.
그들은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화가들을 흉내 내고 있었는데, 그 무렵 르네상스 그림들은 때가 끼어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 그림들은 이후 때를 벗겨 내는 복원을 거쳐 찬란한 색채를 되찾았지만, 이를 흉내 낸 그림들은 물론 여전히 갈색인 채로 남아 있다...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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