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득 깨달았다.
내가 아는 가장 성공한 사람들 가운데 못된 사람이 놀랄 만큼 드물다는 사실을.
예외가 없지는 않지만, 정말 몇 안 된다.
못된 심성이 드물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인터넷이 우리에게 보여 준 사실 하나는, 사람이 얼마나 못될 수 있는가였다.
몇십 년 전만 해도 자기 의견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유명인과 전문 작가뿐이었다.
이제는 누구나 그럴 수 있고, 그래서 전에는 보이지 않던 못된 심성이 얼마나 널리 깔려 있는지 우리 모두 볼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세상에 못된 사람이 이토록 많은데도, 내가 아는 가장 성공한 사람들 중에는 거의 없다.
어찌 된 일일까? 못된 심성과 성공은 서로 반대로 움직이는 걸까?
물론 여기엔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한쪽으로 쏠려 있는 탓도 있다.
나는 특정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만 안다. 스타트업 창업자, 프로그래머, 교수 정도다.
다른 분야의 성공한 사람들은 못됐을 수도 있다고 나는 얼마든지 믿는다.
잘나가는 헤지펀드 운용자들은 못됐을지도 모른다. 내가 잘 몰라서 뭐라 말하기 어렵다.
성공한 마약왕 대다수는 못됐을 거다.
하지만 못된 사람들이 지배하지 못하는 큰 영역이 세상에는 분명 존재하고, 그 영역은 점점 넓어지는 듯하다.
내 아내이자 와이컴비네이터 공동 창업자인 제시카는, 사람의 됨됨이를 꿰뚫어 보는 드문 눈을 지녔다.
그녀와 사는 건 공항 수하물 검색대 옆에 서 있는 기분이다.
투자은행에서 일하다 스타트업 세계로 온 그녀는, 성공한 창업자들이 한결같이 좋은 사람으로 밝혀진다는 사실과, 나쁜 사람들이 한결같이 창업자로서 실패한다는 사실에 늘 놀라곤 했다.
왜일까? 이유는 여럿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나는, 못되게 굴면 머리가 나빠진다는 점이다. 내가 싸움을 싫어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싸움판에서는 결코 최고의 실력을 내지 못한다. 싸움이란 두루 통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승리는 언제나 그때그때의 상황과 얽힌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싸움은 큰 통찰로 이기는 게 아니라, 오직 그 상황에서만 먹히는 잔꾀로 이긴다.
그런데도 싸움은 진짜 문제를 고민하는 일만큼이나 힘이 든다.
자기 머리를 어디에 쓰는지 신경 쓰는 사람에게는 이게 특히 괴롭다. 머리는 쌩쌩 돌아가는데 정작 나아가는 데는 없다. 바퀴만 헛도는 자동차처럼.
스타트업은 공격으로 이기지 않는다. 뛰어넘어서 이긴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대개 이기는 길은 멈춰 서서 싸우는 데 있지 않고 앞서 내달리는 데 있다.
못된 창업자가 지는 또 다른 이유는, 최고의 인재를 데려오지 못하는 데 있다.
일자리가 급해 자기를 참고 견뎌 줄 사람이야 뽑을 수 있다.
하지만 최고의 인재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있다.
못된 사람은 어지간히 설득력이 뛰어나지 않고서야 최고의 인재를 자기 밑에서 일하도록 끌어들이지 못한다.
최고의 인재는 어느 조직에나 도움이 되지만, 스타트업에는 특히 사활이 걸린 문제다.
여기에 더해 또 하나의 힘이 작용한다. 위대한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면, 선한 마음이 동력이 되어 주는 편이 유리하다.
결국 가장 큰 부자가 되는 창업자는 돈에 이끌린 사람이 아니다.
돈에 이끌린 사람은, 성공하는 스타트업이 성장 도중에 거의 다 한 번쯤 받게 되는 큰 인수 제안을 덥석 받아들인다.
끝까지 나아가는 사람은 다른 무언가에 이끌린다.
드러내 놓고 말하지는 않아도, 대개 세상을 더 낫게 만들려 애쓰는 사람들이다.
결국 세상을 더 낫게 만들고 싶은 마음을 품은 사람이 타고난 유리함을 지니는 셈이다.
역사의 대부분에서 "성공"이란 귀한 자원을 손에 쥐는 일을 뜻했다.
사람들은 싸워서 그 자원을 차지했다.
유목민이 수렵·채집민을 척박한 땅으로 몰아낸 경우처럼 말 그대로 싸우기도 했고, 19세기 미국의 대부호들이 철도를 독점하려 서로 다툰 경우처럼 비유적으로 싸우기도 했다.
역사의 대부분에서 성공이란, 한쪽이 얻으면 다른 쪽이 그만큼 잃는 승부에서 이기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승부 대부분에서 못된 심성은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제 이 흐름이 바뀌고 있다. 중요한 승부가 갈수록 '한쪽이 얻으면 다른 쪽이 잃는' 형태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제는 귀한 자원을 차지하려 싸워서가 아니라, 새로운 발상을 떠올리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냄으로써 이기는 경우가 갈수록 늘고 있다.
새로운 발상으로 이기는 승부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기원전 3세기에 아르키메데스가 바로 그렇게 이겼다. 쳐들어온 로마 군대가 그를 죽이기 전까지는 말이다.
새로운 발상이 힘을 가지려면 어느 정도의 사회 질서가 있어야 한다.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만으로는 부족하다. 19세기 대부호들이 서로에게 휘두르고 공산주의 국가들이 자국민에게 휘두른 종류의 경제적 폭력도 막아야 한다.
사람들이 자기가 만든 결과물을 빼앗기지 않으리라 안심할 수 있어야 한다.
사색하는 사람들에게는 늘 그런 안정이 보장돼 왔고, 그래서 이 흐름도 그들에게서 시작됐다.
역사 속에서 무자비하지 않았던 성공한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수학자와 작가와 예술가가 나온다.
흥미로운 대목은, 그들이 일하는 방식이 점점 퍼지고 있다는 데 있다.
지식인들이 벌이던 승부가 현실 세계로 새어 나오고 있고, 이 흐름이 못된 심성과 성공 사이의 오래된 관계를 정반대로 뒤집고 있다.
그래서 나는 잠시 멈춰 이 문제를 곱씹어 본 일이 참 다행이라고 여긴다.
제시카와 나는 아이들에게 못되게 굴지 말라고 늘 애써 가르쳐 왔다.
우리는 시끄러움도, 어지르기도, 군것질도 봐주지만, 못된 짓만은 봐주지 않는다.
이제 나에게는 못된 짓을 단호히 막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고, 막을 때 들이댈 근거도 하나 더 생겼다. 못되게 굴면 결국 실패한다... 원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