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훌륭한 일을 해내지 못하도록 막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형편없는 것을 만들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이 두려움은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훌륭한 프로젝트 상당수는 초기에 그리 인상적이지 않아 보이는 단계를 거친다. 만든 사람의 눈에도 그렇게 보인다.
그 너머에 있는 훌륭한 결과에 닿으려면 이 단계를 뚫고 나가야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러지 못한다.
대부분은 그 단계를 넘어서기는커녕, 스스로 부끄러워할 무언가를 만드는 단계에조차 이르지 못한다.
시작하는 것부터가 너무 두렵기 때문이다.
그 두려움을 꺼버릴 가망이 있을까? 난 있다고 본다.
여기서 작동하는 습관은 그리 뿌리 깊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다고 내가 확신하는 이유 하나는, 이미 그런 변화가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미래를 앞당겨 사는 곳이 이미 몇 군데 있다. 실리콘밸리가 그중 하나다.
이곳에서는 무명인 사람이 이상하게 들리는 아이디어를 붙들고 있어도, 다른 곳에서처럼 무시당하지 않는다.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그렇게 무시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배웠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대하는 올바른 방법은 그 아이디어를 상상력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안 될 이유를 나열하는 대신, 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리려 애쓰는 쪽으로.
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한다.
꽤 잘하게 됐는데, 연습을 아주 많이 했기 때문이다.
와이콤비네이터의 파트너로 일한다는 것은 무명인 사람들이 내놓는 이상하게 들리는 아이디어에 파묻혀 지낸다는 뜻이다.
6개월마다 수천 개의 새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그것을 다 골라내야 한다.
람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무시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당신이 야심 찬 일에 도전하면 주위 사람 상당수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당신이 실패하기를 바란다.
당신이 야심 찬 일에 도전해 성공하면 자기보다 위로 올라설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실리콘밸리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더 나아서 이런 충동을 이겨낸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많은 사람이 당신의 성공을 바라는 이유는 당신과 함께 올라서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투자자에게는 이 유인이 특히 노골적이다.
투자자는 당신이 성공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부자로 만들어주기를 바라기에 당신의 성공을 바란다.
하지만 당신이 만나는 다른 많은 사람도 당신의 성공에서 어떤 식으로든 이득을 기대할 수 있다.
최소한 당신이 유명해졌을 때 예전부터 알던 사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안타깝게도 새로운 것을 하고 싶다면 남들의 회의보다 더 강력한 힘과 마주하게 된다.
바로 자기 자신의 회의다.
당신 역시 자기 초기 작업을 지나치게 가혹하게 판단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것을 피할 수 있을까? 어려운 문제다.
하디는 『어느 수학자의 변명』에서 두 가지를 언급한다.
훌륭한 일은 "겸손한" 사람이 해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떤 분야에서든 교수의 첫 번째 의무는 자기 분야의 중요성과 그 분야에서 자신의 중요성을 조금씩 부풀리는 것이다.
지금 하는 일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면, 초기 결과를 가혹하게 판단하는 경향이 상쇄된다.
가치가 100인 목표를 향해 20% 와 있는 무언가를 보고 가치가 200인 목표를 향해 10% 와 있다고 결론 내린다면, 두 요소가 모두 틀렸어도 기댓값 추정은 맞는다.
하디가 말하듯 약간 과신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여러 분야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들이 약간 과신한다는 점을 나는 여러 번 보았다.
틀린 것이 어떻게 이점이 될 수 있을까?
이 오차가 반대 방향의 다른 오차들을 상쇄하기 때문이다.
약간의 과신은 남들의 회의와 자기 자신의 회의 양쪽에서 당신을 지켜주는 갑옷이 된다.
무지도 비슷한 효과를 낸다.
완성된 작업을 판단하는 기준이 충분히 느슨한 사람이라면, 초기 작업을 완성된 작업처럼 판단하는 실수를 저질러도 안전하다.
야심 찬 프로젝트의 형편없는 시기를 통과하는 또 다른 방법은 곁에 둘 사람을 잘 고르는 것이다.
그런데 늘 격려만 해주는 사람을 모으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런 격려는 곧 에누리해서 듣게 된다.
미운 오리 새끼와 백조 새끼를 실제로 구별할 줄 아는 동료가 필요하다.
그 구별을 가장 잘하는 사람은 자기도 비슷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대학의 학과와 연구소가 그토록 잘 굴러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순전한 의지력이 통할 수도 있다.
초반의 형편없는 시기를 그냥 밀고 나가야 하며 낙담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냥 스스로에게 말하라"는 식의 조언이 대개 그렇듯 이것도 말처럼 쉽지 않다.
게다가 나이가 들수록 기준이 높아져서 더 어려워진다.
그래도 나이 든 사람에게는 상쇄해 주는 장점이 하나 있다.
전에도 이 시기를 겪어봤다는 것이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보다 변화의 속도에 집중하면 도움이 된다.
작업이 나아지는 것이 보이면 형편없는 결과물을 그렇게까지 걱정하지 않게 된다.
또 흔한 요령은 새 작업을 덜 엄격한 다른 종류의 작업으로 여기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림을 시작하며 이건 스케치일 뿐이라고 하거나, 새 소프트웨어를 시작하며 이건 그냥 급조한 코드라고 하는 식이다.
그러면 초기 결과를 더 낮은 기준으로 판단하게 된다.
프로젝트가 굴러가기 시작하면 슬쩍 더 큰 것으로 바꿔놓으면 된다.
빠르게 작업할 수 있고 처음부터 큰 결심을 요구하지 않는 매체를 쓰면 이 방법이 더 쉬워진다.
돌을 깎을 때보다 공책에 그릴 때 이건 스케치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기가 쉽다.
게다가 초기 결과도 더 빨리 나온다.
위험한 프로젝트를 무언가를 만드는 방법이 아니라 배우는 방법으로 여기면 시도하기가 더 쉬워진다.
그러면 프로젝트가 정말로 실패하더라도 얻는 것이 있다.
문제가 충분히 날카롭게 정의되어 있다면 실패 자체가 지식이 된다.
초기 결과물이 형편없어 보인다고 낙담하지 않으려고 자기 자신과 심리 게임을 벌여야 한다는 것은 좀 이상하다.
스스로를 속여서 믿게 하려는 그 내용이 실은 진실이기 때문이다.
야심 찬 프로젝트의 형편없어 보이는 초기 버전은 정말로 보이는 것보다 가치가 크다.
그러니 궁극적인 해법은 그 사실을 스스로에게 가르치는 것일지 모른다.
한 가지 방법은 훌륭한 일을 해낸 사람들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다.
그들은 초기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맨 처음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이 질문에 정확한 답을 얻기는 어려울 때가 있다.
사람들은 자기 초기 작업을 부끄러워해서 굳이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자기 초기 작업을 잘못 판단한다.)
하지만 위대한 성취로 가는 길에서 누군가가 내디딘 첫걸음을 정확히 볼 수 있을 때, 그 첫걸음은 대개 꽤 보잘것없다.
그런 사례를 충분히 공부하면 초기 작업을 더 잘 판단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면 남들의 회의에도, 형편없는 것을 만들까 봐 두려워하는 자기 마음에도 면역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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