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부탁을 한다. 당장 답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이 느껴진다.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른다.
부딪히기 싫어서 알겠다고 한다.
그래놓고 후회한다.
나중에 혼자서, 이상적인 나라면 어떻게 근사하게 거절했을지를 떠올린다.
나는 이걸 몇 번이고 되풀이하며 괴로웠다.
그러다 방법을 찾았고, 몇 년째 아주 잘 쓰고 있다.
한 시간을 들여 근사한 거절문을 미리 써뒀다. 배려하되 단호하게. 길지도 짧지도 않게. 어떤 상황에나 맞게 두루 쓸 수 있다.
컴퓨터와 휴대폰에 저장해두고 복사해서 붙여넣는다. 이제 반갑지 않은 부탁이 오면? 톡, 톡, 톡. 3초 만에 복사하고 붙여넣고 보낸다. 그리고 잊는다.
괴롭지 않다. 불편하지 않다. 원망이 남지 않는다. 미루지 않는다.
이렇게 빨리 거절하는 게 무례하게 느껴지긴 한다. 하지만 나는 이게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다정한 거절이라는 걸 안다.
그걸 보내는 데는 3초가 걸렸다. 게다가 몇 번이고 다시 쓸 수 있다. 놀라운 일이다.
받아본 거절 중 가장 다정했다고 답장을 보내온 사람도 몇 있다.
이제 나는 아예 그 문구들을 외웠다. 얼굴을 마주 보고 말할 때 쓰려고.
누가 눈을 보며 부탁을 하고 답을 기다리는 순간, 이만큼 요긴한 게 없다. 문제없다. 외워뒀으니 갑자기 닥쳐도 바로 나온다. 다정하면서도 단호할 수 있다.
내 글을 여기 올리지는 않겠다. 자기 말투로 써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뼈대만 적어둔다.
1. 분명하고 즉각적인 거절
2. 감사. 부탁을 받았다는 건 그만큼 나를 인정한다는 뜻이니까
3. 더 큰 "예"에 집중하려고 나머지 전부에 "아니오"라고 한다는 설명
4. 잘되기를 바란다는 인사. 지금 사정이 한시적이라면 내년에 다시 물어달라는 말
이 네 문장이면 충분하다. 거절이 장황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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